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홍대 메뉴표 원가 눈대중이랑 폐업 타이밍이랑 딱 맞아떨어진다

서촌 쪽에서 4년째 단골로 다니는 펍 사장이 한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. "메뉴 13개 찍어놓고 9개 팔리면 그건 점포를 두 개 연 거랑 같다." 그때는 그냥 농담인 줄 알았다.

2023년 홍대 돌아다니면서 폐업한 업소 문 앞을 스무 번은 지났다. 그중에 인상 깊었던 건 합정역 3번 출구 근처 칵테일바. 2월에 오픈해서 8월에 유리창에 '양도' 테이프가 붙었다. 사장 인스타에 올린 메뉴 사진을 스크롤하다가 나는 이상한 걸 발견했다. 시그니처 칵테일이 18종이었다. 18종.

단골이 되면 보이는 게 있다. 어떤 재료가 장에 자주 들어오고 어떤 게 냉장고 구석에서 시들어가는지. 그 칵테일바는 베이스가 진, 럼, 데킬라, 위스키, 보드카 다 썼다. 각각 별도 벌크주를 들여놨을 테고, 그 위에 시럽·허브·시트러스까지. 셰이퍼 한 달 임대료보다 재료 관리 비용이 더 컸을 거다.

유흥 업종 리스크 구조가 완전히 다르다

여기서 생각해볼 게 있다. 유흥 업종 비교를 할 때 사람들은 "술 파는 거야 다 거기서 거기"라고 넘긴다. 그런데 펍과 칵테일바와 맥주집은 리스크 구조가 아예 딴판이다.

홍대에서 오래 살아남은 맥주집 하나를 예로 들면, 그 집은 테이블당 안주 2개 시키는 비율이 40%가 넘었다. 메뉴를 6개로 좁히고 그걸로 식사 대용까지 해결하게 세팅한 거다. 손님은 "가볍게 한 잔" 오면서 3만 원씩 결제했다. 셰이퍼보다 회전율이 높았고, 재료 회전도 빨랐다.

반면 폐업한 룸살롱 쪽은 어땠나. 2023년 하반기에 합정 쪽에서 리뉴얼 오픈한 곳이 있는데, 인테리어에 8천만 원 깨뜨리고 기본 세팅값을 1인 5만 원으로 잡았다. 주중 저녁에도 손님이 절반도 차지 않았다. 반년 만에 문 닫았다.

내가 자주 들리는 종로 쪽 펍(https://pub-jongno-pro.xyz/)도 있는데, 그 집은 메뉴 8개로 유지하면서 시즌별로 2개만 리뉴얼한다. 리스크 분산의 정석이다. 사장이 원가를 얼마나 정밀하게 셈하는지 메뉴 가격만 봐도 보인다. 홍대에서 살아남은 집들은 전부 이 패턴이었다.

살아남은 곳들의 공통 분모

하나 더 짚자. 홍대에서 3년 이상 버틴 술집 메뉴판을 모아보면 의외로 가격대가 중구난방이 아니다. 주력 메뉴가 1만 2천~1만 8천 원 구간에 뭉쳐 있다. 이건 우연이 아니다. 홍대 단골들의 지갑 심리가 그 레인지에서 이미 결정된 거고, 그 위에서 재료 조달까지 고도화한 집들은 살아남았다.

리뷰 300개 이상 확보한 집과 50개 이하인 집의 생존 격차도 뚜렷했다. "리뷰 많으면 잘 되는 거 아니냐"고 할 수 있는데 그 반대다. 리뷰가 쌓인다는 건 단골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는 신호고, 그게 곧 원가 계산의 정밀도로 이어지는 거다. 초반에 마케팅만 탈탈 털어서 리뷰 수 올리려다 운영비만 증발한 집들도 꽤 봤다.

가장 피해야 할 선택

결국 가장 위험한 건 "분위기에 투자하는 것"이다. 인테리어나 콘셉트에 집착하면서 정작 메뉴 원가율과 재료 회전 데이터를 안 보는 사장. 2023년 홍대에서 사라진 절반은 거기 있었다. 자기 메뉴의 정확한 원가율을 모른 채 장사한 것, 그게 폐업의 가장 확실한 선행지표다.